성범죄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나면 다음 순서는 대부분 경찰 조사입니다. 출석 요구 연락을 받은 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혼자 들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법은 성범죄 피해자가 혼자 조사를 받도록 두지 않습니다.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옆에 앉게 할 수 있고, 선임한 변호사가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권리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신청해야 쓸 수 있고, 조사 당일에 처음 꺼내면 늦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해자 조사는 어떤 절차인가
피해자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 또는 고소인의 지위에서 조사를 받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21조 제1항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수사에 필요한 때에 피의자가 아닌 사람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에서 작성되는 진술조서는 이후 절차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어떤 구조로 이해하는지가 이 한 번의 조사에서 상당 부분 정해지고, 나중에 진술을 보태거나 바로잡으려 하면 그 자체가 신빙성 다툼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뢰관계인 동석: 성폭력처벌법 제34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4조 제1항은, 법원이 일정한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할 때 검사나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신청하면 재판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석하게 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같은 조 제2항은 이 규정을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조사하는 경우에 준용합니다.
즉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도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동석이 허용됩니다. 재량이 아니라 원칙적 의무의 형태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 일반 형사사건과 다른 부분입니다. 성폭력범죄가 아닌 사건에는 형사소송법 제163조의2가 적용되는데, 이 조항은 법원이 증인의 연령과 심신 상태 등을 고려해 동석하게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이고,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만 원칙적 의무로 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제34조 제3항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거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동석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합니다. 누구를 옆에 앉힐지는 피해자의 의사가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적절한 동석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가족 앞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사건일수록 동석자 선택을 신중하게 정해야 합니다.
피해자 변호사의 조사 참여: 성폭력처벌법 제27조
같은 법 제27조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형사절차상 변호사 선임의 특례를 두고 있습니다. 조문에서 확인되는 권한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자와 법정대리인은 형사절차에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받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제1항).
- 선임된 변호사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피해자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승인을 받아 의견을 진술합니다(제2항).
- 피의자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 증거보전절차, 공판준비기일과 공판절차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제3항).
- 증거보전 후의 관계 서류나 증거물, 소송계속 중의 관계 서류나 증거물을 열람하거나 등사할 수 있습니다(제4항).
- 형사절차에서 피해자의 대리가 허용되는 모든 소송행위에 대해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집니다(제5항).
비용이 부담되는 경우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습니다. 제27조 제6항은 검사가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 국선변호사를 선정해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정하고, 19세미만피해자등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에는 국선변호사를 선정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성인 피해자에게는 선정할 수 있다는 형태이므로, 원하신다면 조사 전에 수사기관에 국선변호사 선정을 요청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또한 제29조는 수사기관과 법원이 피해자의 나이와 심리 상태, 후유장애 유무를 신중하게 고려해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조사와 심리·재판 횟수를 필요한 범위에서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조사가 반복되거나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을 캐묻는 질문이 이어질 때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조항입니다.
조사 전에 해두면 달라지는 것
준비의 목적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나는 것과 기억나지 않는 것의 경계를 스스로 분명히 해두는 것입니다.
- 시간 순서로 정리합니다. 날짜와 장소, 그날 누구와 있었는지, 전후에 무엇을 했는지를 적어 봅니다. 감정보다 순서가 먼저입니다.
- 기억이 흐릿한 부분은 흐릿하다고 적어 둡니다. 조사에서도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한 것처럼 말하는 순간, 나중에 그 지점이 전체 진술의 신빙성 문제로 번집니다.
- 자료는 원본 형태로 보관합니다. 메시지와 통화기록, 병원 기록, 이동 기록은 캡처본만 남기지 말고 원본이 있는 상태 그대로 두십시오.
- 동석자를 미리 정하고 신청합니다. 조사 일정을 조율할 때 함께 이야기하는 편이 수월합니다.
- 변호사 참여 여부를 조사 전에 결정합니다. 조사가 시작된 뒤에 부르는 것보다, 조사 범위와 순서를 미리 확인하고 들어가는 편이 부담이 적습니다.
조사에서 실제로 무엇을 묻나
피해자 조사에서 수사관이 확인하려는 것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었는지, 그 전후로 어떤 연락과 이동이 있었는지, 문제된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그때 어떻게 반응했고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사건 직후 누구에게 무엇을 말했는지입니다.
이 질문들은 진술을 의심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특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준비 없이 들으면 기억이 정확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느껴지기 쉽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맞고, 추측으로 메운 진술은 오히려 신빙성을 떨어뜨립니다.
조사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고 조서가 어떻게 작성되는지 미리 알아두면 당일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피해자·참고인·피의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경찰조사 준비 절차는 경찰조사 준비 안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서는 시간을 들여 끝까지 읽으십시오. 말한 것과 다르게 적힌 부분이나 단정적으로 바뀐 표현은 그 자리에서 정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주 보이는 실수
피해자분들이 불리해지는 지점은 대체로 사건 자체가 아니라 대응 과정에서 생깁니다.
-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과 직접 연락하는 경우.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 이유를 듣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 대화는 대부분 상대방 측 자료로 제출됩니다.
- 메시지나 사진을 지우는 경우. 보기 힘들어서 지우는 일이 많은데, 사라진 자료는 복구가 어렵고 삭제 자체가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 조서를 읽지 않고 서명하는 경우. 조사가 끝난 뒤 조서를 반드시 읽고, 말한 것과 다르게 적힌 부분은 그 자리에서 정정을 요구하십시오. 서명 이후에는 정정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 합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경우. 합의는 형사절차 전체를 보고 판단할 문제이고, 조사 전에 언급되면 진술의 동기가 의심받는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 주변에 사건 내용을 상세히 공유하는 경우. 전해 들은 이야기가 서로 다르게 정리되어 나중에 진술과 어긋나는 일이 생깁니다.
변호사 조력이 특히 필요한 경우
-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직장 상사나 학교 관계자처럼 계속 마주쳐야 하는 관계인 경우
- 상대방이 이미 변호인을 선임했고, 합의 요청이나 연락이 들어오고 있는 경우
- 사건 이후 상대방이 명예훼손이나 무고를 언급하며 역으로 문제 삼는 경우
-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진술 자체가 쟁점이 되는 경우
- 불기소 결정을 받았고 항고나 재정신청을 검토해야 하는 경우
관련 안내
고소부터 재판, 배상명령까지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쓸 수 있는 권한을 단계별로 정리한 내용은 성범죄 피해자 변호 안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성범죄 외의 사건에서 피해자로서 고소를 대리하거나 손해배상을 함께 검토하는 경우에는 범죄피해자 변호를 참고해 주십시오. 음주 후 기억이 끊긴 상태에서 피해를 입어 진술이 어려운 경우에는 술에 취해 기억이 끊긴 상태에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면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신뢰관계인은 누구까지 될 수 있나요
법은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정하고 구체적 범위는 대법원규칙에 맡기고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가족이나 법정대리인, 지원기관 상담원 등이 동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성폭력처벌법 제34조 제3항에 따라 피해자에게 불리하거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동석시킬 수 없으므로, 누구를 부를지는 본인의 의사가 우선입니다.
동석자가 옆에서 대신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동석은 심리적 안정을 위한 제도이고, 진술은 피해자 본인이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163조의2 제3항은 동석한 사람이 신문이나 진술을 방해하거나 진술 내용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법률적인 의견 진술은 선임한 변호사의 역할입니다.
국선변호사를 신청하면 반드시 선정되나요
19세미만피해자등에게 변호사가 없는 경우에는 검사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하여야 합니다. 성인 피해자의 경우 제27조 제6항 본문은 선정할 수 있다는 형태로 되어 있어,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조사를 미루고 준비할 시간을 달라고 해도 되나요
출석 요구는 통보이지만 일정은 대체로 조율이 가능합니다. 동석자나 변호사 참여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정을 함께 말씀하시면 됩니다. 다만 연락을 받고 응답하지 않는 것과 일정을 조율하는 것은 다르므로, 회신 자체를 미루지는 마십시오.
이 글은 일반적인 절차 안내이며 개별 사건의 결론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실관계에 따라 적용되는 조항과 대응 방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